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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ml version="1.0" encoding="utf-8"?><rss version="2.0" xmlns:dc="http://purl.org/dc/elements/1.1/"><channel><title>사람들 게시판의 최근글</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link><description>사람들 게시판에 올라온 최근글을 RSS 리더기로 볼 수 있습니다.</description><generator>GN Board RSS Generator</generator><item><title>노래와 봉사는 나의 숙명</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14&amp;category=문화</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dquo;우리가 &amp;lsquo;사랑에 살고 사랑에 죽고&amp;rsquo;란 말을 많이 하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amp;lsquo;노래에 살고 노래에 죽는다&amp;lsquo;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제가 그만큼 노래를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의미겠죠?&amp;rdquo;&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다연 씨는 노래에 대한 자신의 열정을 사랑과 죽음, 그리고 삶과 죽음에 빗대어 설명했다. 강조하듯 흘리듯 이어가는 그녀의 얘기 속에서 노래에 대한 그녀의 절절한 집념은 읽을 수 있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세상물정을 모르던 어린 시절, 그녀는 가수의 꿈을 처음 꾸었다. 그리고 그 꿈을 키워갔다. 그러나 어려운 가정형편은 그녀를 다른 길로 내몰았다. 그래서 그녀는 가수의 꿈을 접어야 했다. 얼마나 많은 날들을 흘려보냈을까? 마침내 그녀에게 꿈을 이룰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amp;lsquo;KBS 도전 주부가요스타&amp;rsquo;에 참가하게 된 것이다. 그녀는 이 프로그램에서 자신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처음 일승을 했다. 모두들 우연이거나 운이 좋은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었다. 그녀는 그들의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2승, 3승 그리고 마침내 4연승을 달성하게 된다. 그동안 그녀를 무겁게 짖누르고 있던 장애물이 순식간에 걷히는 순간이었다. 그녀의 실력이 검증된 것이다. 그 순간 잠자던 그녀의 꿈이 비로소 날개를 펴기 시작한 것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사람들은 다연 씨를 향토가수라고 부른다. 향토가수는 전 국민에게 알려지지 못하고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수들을 말하는데, 다연 씨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하지만 다연 씨는 자신의 싱글 음반을 발표한 엄연한 가수이다. 가수 활동으로만 따지만 중견의 가수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러나 불혹을 넘긴 나이에 처음 음반을 발표한 까닭에 신인 아닌 신인가수인 것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그녀가 발표한 곡은 &amp;lsquo;당신이 미워요&amp;rsquo;, &amp;lsquo;이별만은 안 돼요&amp;rsquo;이다. 작곡가 김정길 씨가 작사 작곡한 &amp;lsquo;당신은 미워요&amp;rsquo;는 하룻밤 풋사랑에 대한 내용을 담은 곡으로, 이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아쉬움을 경쾌한 리듬에 실었다. &amp;lsquo;이별만은 안 돼요&amp;rsquo;도 김정길 씨의 곡으로 사랑했던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별을 통보했을 때 느끼는 좌절감을 가사에 담아내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두 곡 모두 이별을 소재로 하고 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다연 씨는 &amp;lsquo;당신이 미워요&amp;rsquo;란 곡이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인지 한층 고무된 분위기다. 그녀는 &amp;ldquo;가사가 슬픈 곡인데도 불구하고 리듬이 경쾌해서 그런지 팬들이 너무 좋아해 주셔서 뜨고 있다&amp;rdquo;며 &amp;ldquo;덕분에 지역방송에 초대가수로 가게 되어 너무 기쁘다&amp;rdquo;고 말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다연 씨는 개인적으로 &amp;lsquo;이별만은 안 돼요&amp;rsquo;를 더 좋아한다고 했다. 그 이유는 이 노래의 가사가 그녀의 삶을 반추해 주기 때문이란다. 다연 씨가, 아니 우리 모두가 한번은 겪었을 법한 사건을 이 노랫말이 대신해 주고 있단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그녀는 아직 미발표작인 &amp;lsquo;천리 길 사랑&amp;rsquo;의 음원 제작을 끝냈다. &amp;lsquo;천리 길 사랑&amp;rsquo;은 작사가 한소아 씨의 실화에 김정길 씨가 곡을 쓴 것으로, 서울에서 남도를 오가며 이룬 남녀의 지고지순한 사랑 얘기를 담고 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dquo;늦게 이룬 꿈이니만큼 남들보다 좀 더 노력하고 열정적으로 노래하려고 해요. 그에 못지않게 봉사하는 마음도 다잡으려고 합니다. 저를 사랑해 주시고 아껴주신 팬들께 보답하는 길을 좋은 노래와 봉사 밖에 더 있겠어요?&amp;rdquo;&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다연 씨는 노래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봉사에 대한 열정도 뜨겁다. 그래서 봉사하는 일이라면 바쁜 시간을 쪼개서라도 꼭 참석해야 직성이 풀린단다.&lt;br /&gt;&lt;/p&gt;...</description><category>문화</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4-01-16 00:36:10</pubDate></item><item><title>윤춘영 가죽 공예가, 명인의 길로 성큼...</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13&amp;category=일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dquo;가죽공예는 어찌 보면 정말 정직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정성을 들인 만큼 좋은 작품을 선보일 수 있으니까요. 잠시라도 교만하거나 나태하면 바로 작업 중인 작품에 티가 납니다.&amp;rdquo;&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가죽공예 20년 외길 윤춘영 공예가의 말이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lt;/p&gt;&lt;br /&gt;
&lt;div&gt;&lt;img border=&quot;0&quot; alt=&quot;&quot; align=&quot;left&quot; src=&quot;/data/image/73wn64DnBEg6Q6DqQehVAuWV.jpg&quot; width=&quot;250&quot; height=&quot;374&quot; /&gt;&lt;/div&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대상을 타기까지&lt;/strong&gt;&lt;br /&gt;윤춘영 씨는 얼마 전 &amp;lsquo;제10회 대한민국 아카데미 미술대전 공예부분&amp;rsquo;에서 &amp;lsquo;모란 화초장&amp;rsquo;이란 작품으로 대상을 수상했다. 전통적인 화초장을 재해석해 한지와 가죽공예를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작품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윤 씨는&amp;nbsp; 가죽공예와 관련해 이곳저곳 많은 행사장을 다녔다. 때로는 관람객으로 때로는 제품을 판매하는 공예가로. 윤 씨는 이 때 한지의 세계를 접했다. 그리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무궁무진한 한지의 활용성을 간파했다. 윤 씨가 한지와 가죽공예를 작품을 구상하게 된 것은 이 때부터이다. 그러나 생각을 실행해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바쁜 스케줄 때문에 한가하게 작품을 구상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그렇게 시간은 자꾸만 흘러갔다. 작품 한번 만들어봐야지 하면서도 그 생각은 잠시 뿐이었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가 가죽공예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을 때 &amp;lsquo;대한민국 공예대전&amp;rsquo; 공모가 시작됐다. 덩달아 윤 씨의 고민도 시작됐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그때였다.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 같고, 흥부가에 나와 조금은 친숙한 물건. 그것은 바로 화초장이었다. 더 나아가 한지와 가죽공예가 결합된 화초장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을 굳혔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는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강의가 없는 시간을 쪼개 틈틈이 작업을 해 나갔다. 먼저 가죽에 모란꽃을 그린 다음 꽃잎의 경계를 따라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해 나갔다. 그동안 바느질 장인으로부터 사사 받은 바느질 솜씨가 유용하게 쓰이는 순간이었다. 잎을 따라 바느질을 해주자 모란꽃에 입체감이 생겼다. 그리고 꽃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구입한 반제품 화초장에 가죽공예 작품을 붙이자 완성 된 화초장의 형태를 갖췄다. 화초장을 완성한 윤 씨는 화초장에 금속제품으로 된 다리를 붙였다. 출품하기 전 금속제품 다리에 한지를 덮어씌울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다. 윤 씨는 화초장에 금속다리를 붙인 채로 출품해야 했다. 그것도 마감시간을 넘겨 간신히 접수했다. 접수가 완료된 시간이 오후 10시 30분이었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힘들게 접수했지만 결과는 도예선 탈락이었다. 윤 씨가 처음 맛 본 쓴 잔이었다. 윤 씨는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들어 자신을 위로해 보았지만 자존심이 상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며칠 후 작품을 되돌려 받았다. 윤 씨는 꼼꼼히 작품을 확인했다. 그 결과 작품이 부실덩어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바쁘다는 핑계로 최소한의 확인도 하지 않았던 것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는 이때 자신이 자만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amp;nbsp;&amp;nbsp;&amp;nbsp;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는 이때부터 꼼꼼하게 작품 수정에 돌입했다. 지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금속재 다리도 없앴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미흡한 부분은 좀 더 보완했다. 그런 다음 수정한 화초장을&amp;nbsp;&amp;lsquo;대한민국 아카데미 미술대전&amp;rsquo;에 출품했다. 결과는 대상이었다. 마침내 대상을 획득한 것이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대한민국 공예대전' 입상에 이어&amp;nbsp; &amp;lsquo;대한민국 아카데미 미술대전&amp;rsquo; 대상까지 수상한 윤 씨가&amp;nbsp;가죽공예 명인의 반열에 들어선 순간이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강의를 위해 전국을 가다&lt;/strong&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의 또 다른 직업은 강사다. 각종 기관과 학교 등을 다니며 가죽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인근지역은 물론이고 화순, 고흥까지 출근해 강의를 하고 있다. 그녀의 강의를 듣는 수강생의 연령층도 다양하다. 초등학교 학생에서부터 70세를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그녀는 자신이 15년 동안 가르친 사람들을 일렬로 세우면 강진에서 서울까지 이어질 것이고 강의한 기관을 세우면 강진에서 광주까지는 갈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한번은 서울 모 기관에서 윤 씨에게 강의를 부탁했다. 대구공예박람회에서 윤 씨가 작업하는 모습을 보고 실력을 인정해 부탁을 해 온 것이었다. 윤 씨의 판단에 그 과정은 준전문가 과정이었다. 윤 씨는 그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그리고 그 강의를 위해 몇 달간 서울로 출근했다. 윤 씨는 지금도 그 제자들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윤 씨, 꿈을 말하다&lt;/strong&gt;&lt;br /&gt;윤 씨는 뚜벅이다. 운전면허가 없다. 가까운 곳은 지인에게 부탁해 이동하지만 먼 곳에 가려면 양손에 가죽공예 실습 도구를 잔뜩 들고 버스를 타야 한다. 그래서 올해는 꼭 면허를 따고 싶다고 말했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nbsp;&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가 가장 이루고 싶은 것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작업을 할 수 있는 넒은 공간을 갖는 것이다. 지금은 집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공간이 좁아 멀리서 찾아온 제자들을 맞이하기에는 좀 민망하단다. 그래서 넓은 작업공간을 갖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는 가죽공예 관련 책을 저술하고 싶다고 말했다. 시중에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 있지만 실용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이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작품을 설명해 주고 설명을 따라하면 동일한 작품을 만들 수 있는 그런 책을 쓰고 싶단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윤 씨는 공예 인생 30년을 넘긴 장인들이 즐비한 이 세계에서 아직은 명인보다는 중견 공예가로 불리는 것이 맞다. 그러나 허울 좋은 껍데기를 벗기고 작품의 세계로 얘기한다면 그녀는 분명 가죽공예의 명인이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t;전라닷컴 윤승현&amp;gt;&lt;/p&gt;...</description><category>일반</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2-08-07 13:20:10</pubDate></item><item><title>유인학 한양대 명예교수, 세계불교CEO협회 상임대표에</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12&amp;category=정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11-16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제26차 세계불교도대회(WFB) 한국총회 참석자들은 세계불교CEO협회를 창립하기로 결의하고, 유인학 한양대 명예교수(법학박사&amp;middot;前 국회의원)를 상임대표에 선임했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팔롭 타이어리 세계불교도대회(WFB) 사무총장, 네팔 조티 그룹 파드마조티 회장, 인도네시아 카멜 리아 기업컨설팅 대표, 자가티차마티파라 스리랑카 마사회장 등 4명도 협회 창립진으로 참여했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유 신임 대표는 &amp;ldquo;불교문화와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한 수익모델을 개발해 건전한 불교재정을 확보하기 위해 협회를 창립하게 됐다&amp;rdquo;며 &amp;ldquo;불교 기업인간 국제 네트워크 결성을 통해 부처님의 뜻에 따른 봉사와 나눔를 실천하는데 앞장서겠다&amp;rdquo;고 밝혔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전남 영암 출신인 유 대표는 13&amp;middot;14대 국회의원과 국회 예산결산위원, 국회 통상협력연구회장, 민주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위원장, 민주당 전남도지부장, 한국조폐공사 사장을 지냈으며, 현재 광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lt;/p&gt;...</description><category>정치</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2-06-19 07:01:36</pubDate></item><item><title>강진원 강진군수, 귀농ㆍ귀촌 100인 자문단에 선정</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11&amp;category=정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 100인 자문단, 오는 4일 2012 대한민국 귀농ㆍ귀촌 페스티벌&amp;lsquo; 개막식에서 출범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강진원 강진군수가 농림수산식품부에서 주관한 귀농ㆍ귀촌 100인 자문단에 선정됐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강진군에 따르면 농림수산식품부가 지난해 처음 전국 귀농ㆍ귀촌 가구 수가 1만 가구를 돌파해 베이비붐 세대가 은퇴하고 농어촌 전원생활에 관심이 커지면서 귀농ㆍ귀촌에 대한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 지고 있다며 오는 4일부터 6일까지 서울 전시무역컨벤션센터에서 열리는 &amp;lsquo;2012 대한민국 귀농ㆍ귀촌 페스티벌&amp;rsquo; 개막식에서 &amp;lsquo;100인의 자문단&amp;rsquo;을 출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귀농ㆍ귀촌 자문단으로 활동하게 되는 강진원 강진군수는 지방자치단체의 도시민 유치행사, 농어업분야 일자리 관련 방송ㆍ캠페인에 참가하며, 귀농ㆍ귀촌 정책과 실제 사례를 알리는 메신저로 나서게 된다. 또, 지역경제 살리기, 재능기부, 문화나눔 캠페인과 귀농ㆍ귀촌 세미나에도 참석해 귀농ㆍ귀촌 유치에 힘쓰게 된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강진원 강진군수는 &amp;ldquo;자문단으로 활동하면서 강진이 전국에서 귀농ㆍ귀촌 1번지로 정책이 가장 잘 돼 있고 넓은 농토와 싼 땅값, 오염되지 않아 안전한 먹을거리를 생산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임을 홍보하겠다&amp;rdquo;며 &amp;ldquo;우수 도시민을 발굴하여 농어촌 이주 및 정착을 아낌없이 지원하는 것은 물론 FTA 대비 농업 경쟁력도 함께 높여 나가겠다&amp;rdquo;고 말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한편 100인 자문단에는 강진군에서 선도 농어업인으로 활동하고 있는 (주)청림농원&amp;nbsp; 안정균(63)대표도 선정됐으며, 서규용 농식품부 장관을 비롯한 박원순 서울시장, 귀농인, 의료ㆍ문화ㆍ교육계 전문가들과 최불암, 박은혜, 현영, 강원래, 송대관 등 방송인도 동참한다.&lt;/p&gt;&lt;br /&gt;
&lt;br /&gt;...</description><category>정치</category><author>조창두</author><pubDate>2012-05-03 21:34:20</pubDate></item><item><title>한국지방자치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10&amp;category=일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 제248회 강진다산강좌, 박재영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초청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전남 강진군이 박재영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을 초청, 오는 4일 오후2시 강진아트홀 소공연장에서 제248회 강진다산강좌를 개최한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squo;한국지방자치의 역사와 제도, 현실, 그리고 발전방향&amp;rsquo;이라는 주제로 강연에 나서는 박재영 부위원장은 이날 강연을 통해 한국지방자치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고 지방자치 유형과 한국자치제의 유형을 비교하고 한국민의 지방자치에 대한 인식현황에 대해 설명할 계획이라고 전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또, 박 부위원장은 민선자치 15년의 공과 과에 대해 분석하고, 앞으로의 지방자치 발전방향에 대한 의견을 제시할 방침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박 부위원장은 제25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입문한 이후 내무부, 전라남도 함평군수, 기획예산처 균형발전재정기획관, 행자부 균형발전지원본부장, 전라남도 행정부지사, 대통령실 정무수석실 행정자치비서관 등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으로 활동 중이다.&lt;/p&gt;...</description><category>일반</category><author>조창두</author><pubDate>2012-04-30 21:57:13</pubDate></item><item><title>제 소중한 첫 월급, 후배들을 위해 쓰고 싶었어요!</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9&amp;category=일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 강진군청 방성후 주무관 첫 월급 전액 강진군민장학재단에 기탁 -&lt;br /&gt;&amp;nbsp;&lt;br /&gt;2012년도 강진군 제1회 경력경쟁임용시험에 합격해 현재 강진군청 농산팀에서 수습중인 방성후 주무관이 지난 20일 첫 월급 112만4,710원 전액을 후배들에게 써 달라며 강진군민장학재단에 기탁해 훈훈하다.&lt;br /&gt;&amp;nbsp;&lt;br /&gt;방성후 주무관은 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 총학생회장을 역임했으며, 정보기기운영기능사, 워드1급, 컴퓨터활용능력2급 등 각종 자격증 취득은 물론 각종 대회에 참가해 우수한 성적을 다수 거둔 인재로 올해 관내 실업계고교 졸업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2012년도 제1회 경력경쟁임용시험에 최종 합격의 영광을 안았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방성후 주무관은 &amp;ldquo;전남생명과학고등학교를 다니면서 강진군민장학재단 장학금을 2년 동안 받아 큰 도움이 됐다&amp;rdquo;며 &amp;ldquo;취업을 하게 되면 후배들을 위해 장학기금을 꼭 내고 싶었다&amp;rdquo;고 말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이어 &amp;ldquo;첫 월급은 부모님께 드려야 하겠지만 부모님께 미리 말씀드렸더니 좋은 일 한다며 흔쾌히 허락하셨다&amp;rdquo;고 덧붙였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한편 강진군민장학재단은 지난 2005년에 설립한 이후 교육 분야에 집중 투자해 지역인재 육성은 물론 지역 교육발전에 적극 앞장서고 있다.&lt;/p&gt;...</description><category>일반</category><author>처음</author><pubDate>2012-04-25 18:10:43</pubDate></item><item><title>강진군, 군민의 상 수상자 선정</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8&amp;category=일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 최현만, 정윤석, 대벌자원봉사단, 박범석 씨 선정, 오는 5월 1일 군민의 날 시상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강진군이 오는 5월 1일 제40회 강진군민의 날을 앞두고, &amp;#985168;2012년도 군민의 상&amp;#985169; 수상자를 선정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강진군은 지난 20일 강진군민의 상 심사위원회를 개최해 지역사회봉사부문 수상자로 미래에셋 최현만(52세) 수석부회장을, 교육문화 부문 수상자로는 국가지정중요문화재 제96호 옹기장 정윤석(70세)씨를, 충효도의부문에 대벌자원봉시단, 농림어업부문에 박범석(63세)씨를&amp;#985168;2012년도 군민의 상&amp;#985169;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발표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지역사회봉사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amp;nbsp; 미래에셋 최현만 수석부회장은 지난 2006년부터 5회에 걸쳐 강진군민장학재단에 3천5백만원을 기탁하고, 2002년부터 강진중학교에 다니는 어려운 학생 200명에게 6천4백만원을 기탁하는 등 지역인재 및 명문고 육성에 기여하였으며, 강진청자축제 및 군동은어축제 등에도 9천만원을 기탁하는 등 각종 행사에 적극 참여는 물론 고향 발전을 위해 기탁과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특히 지난 2011년 포춘코리아의 한국경제를 움직이는 인물, 대학생들이 닮고 싶은 증권부문의 최고경영자로 선정되면서 대 내&amp;#8228;외적으로 강진의 위상을 드높이고 군민들의 자긍심 고취에 기여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교육문화 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정윤석씨는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옹기장으로 칠량 봉황 옹기를 전국에서 최고의 옹기 발생지이자 옹기마을이라고 알려 강진의 옹기산업발전에 크게 기여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또, 선조들의 전통적 수작업 기법을 전승하는 것은 물론 전국 각종 축제 및 전시회를 통해 강진옹기의 우수성과 강진 지역을 알리는데 힘써왔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충효도의부문에 선정된 대벌자원봉사단은 지난 2005년부터 대벌마을에 홀로 사는 노인들을 대상으로 목욕, 이&amp;#8228;미용, 가사도우미, 간병은 물론 매월 5천원~1만원의 회비를 걷어서 밑반찬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 배달하는 등 경로효친 사상을 몸소 실천하고 있어 선정됐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농림어업부문에 선정된 박범석(63세)씨는 1980년부터 마량에서 김양식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갯병 발생 피해예방을 위하여 갯병에 강한 잇바디돌김을 발굴 보급해 김양식 어업인들의 안정적 소득향상에 기여했다.&lt;/p&gt;...</description><category>일반</category><author>조창두</author><pubDate>2012-04-22 22:15:56</pubDate></item><item><title>노량진 수산시장은 김홍철의 피와 땀 - 김홍철의 성공신화</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4&amp;category=경제</link><description>&lt;div&gt;&lt;img border=&quot;0&quot; alt=&quot;&quot; align=&quot;left&quot; src=&quot;/data/image/fcb9IVyjk4vwROuYWSUMfGQhV.jpg&quot; width=&quot;300&quot; height=&quot;327&quot; /&gt;&lt;/div&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 전 수산업협동조합 중앙회 경제사업 대표이사는 자신의 30년 수협 인생&amp;nbsp; 중 가장 자랑스러웠던 일을 꼽으라고 하면 그것은 &amp;lsquo;노량진 수산시장&amp;rsquo;을 인수한 일이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사실 그가 수협중앙회에서 근무하면서 이뤄낸 성과는 이것 말고도 많다. 일몰제(법률이나 각종 규제의 효력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적으로 없어지도록 하는 제도)에 해당돼 존폐의 기로에 서있던 면세유류 공급기간을 4년 연장한 일이라든지, 정부와 담판을 벌여 경제사업부 예산 1,200억 원을 확보한 일, 유류저장 시설을 확보한 일, 178억에 달하는 외환사고를 수습한 일, 해태건조기에 대해 면세유를 공급받을 수 있게 한 일, 그리고 지금은 전설이 되어버린 &amp;lsquo;부실금융 회수작전&amp;rsquo;, 속칭 &amp;lsquo;엔테베 작전&amp;rsquo; 등이 그것이다. 그런데도 김홍철은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해 유난이 애착이 많다. 그가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한 애착을 쉽게 끊어 내지 못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노량진 수산시장은 그와 동료들이 온 몸을 불살라 일궈낸 수협인 모두의 삶의 터전이었다. 그 터전은 김홍철에 의해 확실하게 자리매김 했다. 그런데 노량진 수산시장이 동양의 메카로 도약하려는 순간 김홍철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이렇듯 노량진 수산시장은 김홍철의 삶에 하나의 신화를 추가했고 또 아쉬움과 미련도 남겼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2001년 노량진 수산시장의 인수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가열됐다. 누가 노량진 수산시장을 인수하느냐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2001년 9월 11일 자 한겨레신문 &amp;ldquo;야, 응찰포기 겨냥 수협국감 앞당겨&amp;rdquo;라는 제하의 기사를 보면 &amp;ldquo;한나라당이 수협의 입찰 포기를 종용하기 위해 고의로 국정감사 일정을 앞당겼다는 의혹이 일고 있다&amp;rdquo;라는 내용을 보도하고 있다. 그 당시 노량진 수산시장의 인수 경쟁에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가를 방증해주고 있는 기사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당시, 정치권의 눈치를 보던 대표이사와 일부 이사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의 인수를 반대했다. 조합원의 80~90%가 이에 동조했다. 그러나 김홍철의 생각은 달랐다. 수협인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수협중앙회가 노량진 수산시상을 인수해야 한다고 확신했다. 노량진 수산시장 입찰에 참여하는 것은 당시 권력의 실세와 입찰 경쟁을 벌여야 했기 때문에 일이 잘못되면 김홍철의 신변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러나 김홍철은 뚝심으로 밀어 붙였다. 김홍철은 &amp;ldquo;어업인의 시장 지배력을 가지려면 반드시 노량진 수산시장은 수협중앙회가 인수해야 한다.&amp;rdquo;라는 당위성을 내세워 의원들을 설득해 나갔다. 김홍철의 설득이 통했는지 서울의 노른자위 땅 13,500평을 1,480여억 원에 인수하게 된다. 수협중앙회는 이때 정부로부터 수산시장 현대화 시설자금 1,800억의 70% 1500억 원을 지원 받는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수협중앙회가 우여곡절을 겪으며 노량진 수산시장을 인수했지만 상인들의 반발이 시작됐다. 자신들이 길거리로 나앉을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었다. 그들은 500여 명씩 때지어 다니며 수협중앙회 직원들을 위협했다. 한마디로 험악한 분위기였다. 그들에게는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 물러설 수 없었던 것이었다. 수협측은 그들에게 불이익이 없을 것이라 약속했지만 상인들은 과거에 경험했던 불신 탓에 수협의 약속을 믿어주지 않았다. 이번에도 김홍철이 나섰다.&amp;nbsp; 김홍철은 상인들을 직접 만나 &amp;ldquo;상인이 없는 시장은 시장으로서의 존재 가치가 없다. 각 상인마다 분사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 상인과 수협이 공존하는 시장으로 만들겠다.&amp;rdquo;며 이들을 설득했다. 30년 김홍철의 인생이 헛되지 않았던 것이었을까. 김홍철은 10분 만에 이들을 설득해 돌려보낼 수 있었다.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lt;br /&gt;&amp;ldquo;그 당시 내 말을 곧 법이었어. 그렇다고 강제적으로 압박을 한 것이 아니고......, 내가 수협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내가 뱉은 말은 한 번도 어긴 적이 없다는 것을 상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내 말을 믿어줬던 거야.&amp;rdquo;&amp;nbsp;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이때부터 노량진 수산시장에 대한 김홍철의 개혁 드라이브가 시작됐다. 김홍철은 먼저 시장 내의 부정부패와 비리를 척결했다. 신뢰받는 시장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조치였다.&amp;nbsp; 그리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시장 내의 전등 3,800여개를 교체했다. 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냄새제거시설도 갖추었다. 여성 고객들이 하이힐을 신고 수산시장을 마음 놓고 드나들 수 있도록 바닥을 청결하고 유지했다. 이런 일련의 작업들은 노량진 수산시장이 혐오시설이라는 오명을 벗고 사랑받는 시설로 거듭나기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과제였다. 또한 상인들이 매장의 위치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장소추첨제를 도입했다. 특별한 백이 없어도 추첨에서 뽑힌 상인들은 좋은 위치의 매장을 운영할 수 있었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일부 상인들이 좋은 장소의 매장을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2년 마다 장소를 교체하는 하는 제도도 마련했다. 그리고 매년 1~2회 이벤트를 개최해 상인들과 고객들이 가까워 질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김홍철의 이런 노력은 그해 바로 결실을 맺었다. 그동안 적자로 운영되던 노량진 수산시장이 인수 첫해부터 30~40억의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매년 경신했다. 현재의 노량진 수산시장의 명성은 이렇게 이루어진 것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수협중앙회 경제사업부 예산 1,200억을 확보하다&lt;/strong&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이 수협중앙회 대표이사로 취임할 당시, 수협은 IMF로 인해 부도위기에 몰려있었다. 수협 신용사업부에 공적자금이 투입되고 있었고, 수협 경제사업부의 예산은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신용사업부에 공적자금이 투입됐기 때문에 경제사업부는 신용사업부의 자금에 손을 댈 수 없었다.&amp;nbsp; 이때 김홍철은 경제사업부의 예산 확보를 위해 관련 부처들을 찾아다니며 예산지원에 대한 당위성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김홍철은 관련부처 담당자에서부터, 예산부처 담당자, 그리고 국회의원까지 필요하다면 누구라도 가리지고 않고 찾아다녔다.&amp;nbsp; 이런 김홍철의 진정성이 통했는데 2003년 1,200억 원의 예산을 확보하는데 성공했다. 정부가 2003년부터 5년 동안&amp;nbsp; 매년 200억씩을 수협중앙회에 지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일시불로 주지 못한 금액에 대한 이자까지 합산해 지원해 주기로 한 것이다.&amp;nbsp; 정부의 예산을 확보함으로써 수협은 외부 차입을 하지 않고도 자본금을 충당했다. 이로 인해 수협은 매년 100억여 원의 경영개선효과를 가지게 된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나는 이렇게 설득했다&lt;/strong&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이 공무원과 정치인을 설득하기 위해 펼친 논리는 다음과 같다.&lt;br /&gt;&amp;ldquo;수협의 문제는 경제적인 논리보다는 정치적인 차원에서 풀어가야 한다. 수산업을 버리면 우리나라 바다는 일본, 중국의 어장이 될 것이다. 우리 수산업이 존재해야 국토를 지킬 수 있다. 이 문제는 통치권적인 차원에서 결정해야 할 사안이다&amp;ldquo;&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담당 공무원이 난색을 표하면&amp;nbsp; 김홍철은 &amp;ldquo;담당은 이 문제를 위로만 올려주기만 하면 된다. 상관은 내가 설득하겠다.&amp;rdquo;라며 담당자를 설득했다. 당시 김홍철에게 실무자를 거치지 않고 윗선으로 바로 갈 수 있는 인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김홍철은 &amp;ldquo;편법을 쓰지 않고 정상적이 절차를 밟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amp;rdquo;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김홍철은 몇 번의 사업 추진 과정에서 이러한 신념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증언하고 있다.&lt;br /&gt;&amp;nbsp; &lt;br /&gt;&amp;ldquo;사업 하나를 성사시키려면 정부부처의 주사, 사무관, 과장, 국장을 차례로 설득해야 하는데, 실무자 만나기는 쉽나? 전국에서 하루에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실무자를 만나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데 나만 만나주겠어. 그러니 실무자가 출근할 때부터 퇴근할 때까지 그의 주변을 서성거리는 것이 일이지. 화장실까지 따라가서 말 한마디만 나눠도 절반은 성공이야. 어렵사리 실무부서를 통과해도 다음은 예산담당부서를 찾아가 같은 일을 반복해야 해. 예산부서를 통과하면 국회의원을 찾아가 설득해야 하고......, 이렇게 1년은 꼬박 투자해야 정부예산을 타낼 수 있지.&amp;rdquo;&amp;nbsp;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길 잃은 행정에 해법을 제시하다&lt;/strong&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 전 수산업협동조합 중앙회 경제사업 대표이사의 경험담은 목적과 명분에서 길을 잃고 허우적대는 자치단체의 행정에 확실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사업의 목적이 확실해야 하고 절차적 정당성이 확보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같은 요건들이 갖춰지면 목적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 그것이다.&amp;nbsp; 김홍철은 이런 내용을 &amp;ldquo;&amp;lsquo;신뢰성&amp;rsquo;, &amp;lsquo;투명성&amp;rsquo;, &amp;lsquo;공정성&amp;rsquo;을 갖추면 못 이룰 일이 없다&amp;rdquo;라는 말로 함축해 표현하고 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김홍철의 못 다 이룬 꿈&lt;/strong&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1,480여억 원에 인수한 노량진 수산시장은 현재 1조 원대의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김홍철의 선택과 집요한 노력이 이 같은 신화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김홍철은 이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노량진 수산시장을 획기적으로 변모시킬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그것은 노량진 수산시장 13,500평 전체를 아시아의 수산물 메카로 조성하는 일이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1층은 수산물 도매시장, 2층은 수산물 가공시설, 3층은 먹거리(음식점)촌, 4층은 문화관으로 설계되어 있다. &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김홍철은 자신의 임기 중에 설계를 마치고 예산까지 확보 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대표이사직을 물러나고 몇 년이 지났지만 사업이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홍철은 지금 &amp;ldquo;동력을 잃은 노량진 수산시장이&amp;nbsp; 하루빨리 아시아의 수산물 메카로 거듭나는 것을 보고 싶다&amp;rdquo;는 염원을 얘기하고 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t;주간 전라닷컴 윤승현&amp;gt;&lt;/p&gt;...</description><category>경제</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2-01-29 21:17:01</pubDate></item><item><title>2012년 처음 맞는 앞보름에</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3&amp;category=정치</link><description>&lt;div&gt;&lt;img border=&quot;0&quot; alt=&quot;&quot; align=&quot;left&quot; src=&quot;/data/image/SvCauPHJCUSwMjmRJmyi5r6VXWSy.jpg&quot; width=&quot;150&quot; height=&quot;185&quot; /&gt;&lt;/div&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strong&gt;새해 열닷샛날, 잠 못 이루는 밤에... &lt;/strong&gt;&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누군가 말했다. &amp;ldquo;추억은 아름답다&amp;rdquo;라고. 추억을 &amp;ldquo;아름답다&amp;rdquo;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 그는 참 행복한 사람이다.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그러나 마냥 쉽지 않은 행복을 마음껏 누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여유로운 마음속에는 지나온 삶의 괘적들이 망울망울 꽃망울이 되어 가슴 한켠에 풍성한 곶간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세상이 적막으로 드리워진 이 시간, 그들은 행복한 꿈을 꾸고 있지 않을까?&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squo;나의 아름다운 추억은 어디에 담겨있을까?&amp;rsquo; 잠 못 이루는 이 밤. 나는 지난 한해의 기억들을 반추해 본다. 개인의 행복과 모두의 행복을 고민하던 시간 들이 마치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amp;nbsp;&amp;nbsp;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지난해는 내게 시련의 해였다. 또한 나의 인내를 시험해 볼 수 있는 해이기도 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이야기는 2010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는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렸다. 그리고 대한민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구제역으로 정부는 초긴장상태였고 축산 농가는 패닉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불행 중 다행이랄까,&amp;nbsp; 전국의 구제역 사태가 수습될 때까지 전라남도 지역에서는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 하늘의 보살핌이었고 우리 모두가 합심해서 노력한 성과였다. 이렇게 혹독한 구제역 탓에 강진군 의회는 년 초 업무보고를 생략하고 2011년의 의정활동은 시작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2011년 3월 어느 날, 나는 적십자 회원들(20여명)과 처음으로 해외 워크숍을 떠났다. 바쁜 사이에 모처럼 맞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동안 회원들 간에 미뤄둔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행복한 순간도 잠시, 집에서 보낸 문자메시지를 받고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그 내용은 다름이 아닌, 여러분도 이미 주지하고 있는 강진군장학재단에 관련된 강진군의 보도자료 였다. 그 때의 시련은 계속되다가 그해 12월 교육발전팀장으로 부터 &amp;ldquo;윤희숙의원이 그 사건과 해당사항이 없다&amp;rdquo;는 결론을 얻고 나서야 마무리 되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나는 그때부터 지금까지의 경험에 비추어 이런 결론을 내려 본다. 우리 모두에게는 각자의 직책에 맡는 직분이 주어져 있다. 어떤 이는 열과 성의를 다해 맡은 바 직분을 충실히 수행할 것이고, 어떤 이는 우리가 말하는 혹세무민, 혹은 립서비스로 군민들을 현혹 하는 데만 급급하다. 그러나 당장은 나의 진심이 상대의 달콤한 유혹보다 믿기 어렵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강진군과 군민에 대한 나의 진심과 진정성은 이해될 것이다라고.&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2012년에는 우리 모두가 양심을 거울을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 강진군이 예전처럼 평화롭고 정감이 넘치는 군이 되었으면 한다. 하루가 멀다하고 전국의 뉴스메이커가 되고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강진군은 모습은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며 한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나는 내 양심의 거울에는 먼지가 끼지 않았다고 믿고 있지만 올해는 작은 먼지 한 톨도 없는 투명한 거울이 되려고 한다. 그것만이 내가 나 다움을 지키는 길이고 군민의 믿음에 보답하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늦었지만, 지난해부터 나에게 미안해하면서도 내 편을 들어주지 못했던 강진군 공직자들에게 &amp;ldquo;너무 미안해하지 말라&amp;lsquo;는 말과 함께 소주 한잔 나누고 싶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amp;ldquo;2012년은 흑룡의 해라 뭔가 상서로운 기운이 들어올 것 같다&amp;rdquo;며 신년 계획을 거창하게 세우는 친구들을 보며 나는 반대로 나의 삶에서 비워가는 연습을 하고 있다. 이것은 내가 아팠던 만큼 성숙해졌고, 모진 풍파 속에서 버틴 만큼 더 강해 졌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리라.&lt;br /&gt;&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올해도 어김없이 바쁘게 돌아간다. 눈을 뜨고 일어났더니 벌써 보름이 돌아왔다는 얘기다. 올 4월에는 지역의 민의를 대표할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해이다. 그런데 강진은 권력에 눈이 멀어 강진군을 팽개친 군수를 대신할 새 군수를 선출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바쁜 정치일정에 더 바쁜 일을 덤으로 안고가게 된 것이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올해는 기타도 배우고 싶고, 도자기도 배우고 싶다. 꼭 해야 하는데. 할 수 있으려나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올해는 내 걱정도 걱정이지만 강진군민들의 걱정을 덜어줬으면 한다.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욕망을 위해 강진군을 분열과 증로로 가득한 군으로 만든 지도자 보다는 가슴이 따뜻하고, 군민과 소통하며,&amp;nbsp; 강진군을 부유하게 만들 지도자가 선출되기를 기도해 본다. 능력도 능력이지만 타고난 품성은 바꿀 수 없으니 도덕적으로 선한 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더불어. &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내게는 사내 녀석이 둘이 있다. 아들이 각자 맡은 일에 충실하고, 내내 건강하며, 직장에서는 인정받은 사람으로 일해 주기를 기도한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새해에는 벗님들과 군민들께 내내 행복한 소식만 전달되기를......,&lt;/p&gt;&lt;br /&gt;...</description><category>정치</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2-01-24 13:59:07</pubDate></item><item><title>군동면 청년회 신ㆍ구 임원  이ㆍ 취임식</title><link>http://gangjin.net/bbs/?tbl=human&amp;mode=VIEW&amp;num=2&amp;category=일반</link><description>&lt;p style=&quot;margin: 0px&quot;&gt;1월 13일(금) 오후7시,&amp;nbsp; 군동초등학교 체육관에서 군동면 청년회 신ㆍ구 임원의 이ㆍ취임식이&amp;nbsp;&amp;nbsp; 개최되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군동청년회는 회원 투표를 거쳐 신임 회장에 오종의(군동 덕천 출신. 45세) 씨를, 상임 부회장에는 황세환 씨를, 그리고 부회장에는 조창두, 오재균, 안용순 씨를 선출하였으며, 김현장 씨를 사무국장으로, 박준송 씨를 재무국장으로 선출하였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군동면 청년회는 18년 전 150여 명(초대회장 : 조기춘)이 &amp;lsquo;지역 봉사&amp;rsquo;를 기치로 내걸고 창립되었다. 그런데 지속적인 농촌의 인구감소와 맞물려 현재는 4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lt;/p&gt;&lt;br /&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군동면 청년회의 활동으로는, 매년 초등학생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기, 군동면 축제인 은어축제를 주관하며 지역 독거노인에게 이ㆍ미용 봉사와 떡국나누기, 그리고 지역 방역활동 등이 있다.&lt;/p&gt;&lt;br /&gt;
&lt;p style=&quot;margin: 0px&quot;&gt;&lt;br /&gt;&amp;lt;조창두 기자&amp;gt;&lt;/p&gt;...</description><category>일반</category><author>관리자</author><pubDate>2012-01-14 11:09:40</pubDate></item></channel></rss>